
1. ADHD와 기억력의 깊은 연관성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는 산만하거나 충동적인 성향을 넘어 기억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ADHD를 가진 내담자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방금 한 말이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잊어버릴 것 같아서 메모를 했는데, 메모를 했다는 사실까지 까먹었어요, 이야기 중에 들은 내용을 정리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ADHD를 가진 사람들은 기억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저장하는 초기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주의력이 분산으로 인해 뇌가 중요한 정보들을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구멍 뚫린 바구니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ADHD가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
○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약화
작업기억 정보를 잠시 머리에 유지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뇌의 메모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이 메모장에 문제가 있어 한 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내담자 A 씨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집에 가기 전에 우유 한 병 사서 가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끝난 뒤 마트에 가서 다른 물건들은 모두 구입하고, 우유는 사야 한다는 것을 까먹었습니다. 그는 “계획을 세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며 좌절감을 호소했습니다. 상담을 통해 A 씨는 짧은 메모나 스마트폰 알람 등을 활용하여 점차 기억력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 산만한 주의력으로 인한 정보 누락
ADHD의 대표적인 특징은 산만합입니다. 외부 자극에 쉽게 주의를 빼앗기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집중해야 할 순간이 오더라도 전혀 엉뚱한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담자 BB 씨의 경우 회사에서 발표를 하던 중 동료가 재채기하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발표의 흐름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발표자료는 매우 충분했지만 순간의 산만함으로 인해 중요한 정보와 행동에 제약이 생긴 것입니다.. 발표를 망친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워했고 지속적인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 정보 필터링의 어려움
우리의 뇌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걸러내고 중요한 정보만을 기억하는 ‘필터링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이 필터링 과정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즉, 모든 정보가 동일한 수준으로 들어와서 뇌에 부담을 줍니다. 내담자 C 씨는 “저는 보고서를 쓸 때 사소한 오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정작 꼭 적어야 할 내용을 빼먹기도 해요.”라며 고통스러워합니다.. 뇌가 정보를 충분히 필터링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오타나 띄어쓰기 등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정보는 눈에 띄도록 미리 표시하고, 덜 중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흘려보내는 훈련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 시간 관리의 어려움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 감각에 약한 편입니다. 이런 증상을 ‘시간 왜곡’이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방금 전의 일을 몇 시간이 지났다고 기억하거나,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현저하게 부족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기억력 저하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적절하게 배치하제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내담자들은 “계획을 미리 세우지만 항상 마감 직전에 마무리하게 된다.”는 경험을 호소합니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는데 항상 약속시간에 늦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마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시간단위 혹은 분단위로 일정을 쪼개어 시간관리를 체계적으로 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 ADHD로 인한 기억력 저하, 어떻게 극복할까?
○ 시각화 전략 활용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시각적인 정보에 더 잘 반응합니다. 그래서,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두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벽에 메모를 붙여 두거나 달력에 스티커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매번 회의 일정을 놓쳐서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었던 한 내담자는 월간 플래너에 스티커를 붙이고 메모지를 잘 보이는 곳에 붙이는 방법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 멀티태스킹 피하기
ADHD환자의 경우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메일을 쓰다가 다른 업무가 생각나더라도, 그 일은 메모해 두고 일단 이메일을 끝까지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을 시도할 때 더 산만해지고 결국 어느 것 하나도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확한 일정표를 만들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 환경 최적화하기
외부의 자극에 민감한 ADHD환자들의 특성상, 작업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효과적입니다. 특히, 시끄러운 환경이나 소음이 많이 들리는 사무실에서는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이라면 재택근무를 요청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면 사람들이 많이 없는 야간 시간 혹은 이른 시간에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조용한 환경 조성은 ADHD환자들이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두뇌 트레이닝
ADHD로 인한 기억력 저하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작업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퍼즐, 카드게임, 숫자 맞추기, 초성 맞추기 등의 활동이 뇌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간단한 숫자를 외우거나, 도형 혹은 패턴을 집중해서 기억하는 것, 체계적인 계획표 작성 등은 두뇌를 트레이닝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 디지털 기술 활용하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각종 디지털 기기의 아람기능, 타이머 등은 ADHD로 인한 기억력 저하를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ADHD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맞춤형 앱들도 출시되어 있어 시간관리 및 기억력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회의가 잦은 직장생활을 하던 내담자 E 씨는 “회의 시간이나 약속을 자꾸 잊어버린다”라고” 힘들어했지만,, 스마트폰 캘린더와 연동된 알람 시스템을 활용한 뒤로 실수가 훨씬 줄었다며 만족해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기억력 보완 전략은 좋은 훈련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4. 결론 : 혼자가 아니라 함께 풀어가는 문제
ADHD로 인한 기억력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 의한 기전이므로 적절한 전략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ADHD 내담자들이 상담을 통해 가장 많이 깨닫는 것은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뇌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한 개선 방법을 찾으면 ADHD로 인한 기억력 문제는 충분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상담자로서 내담자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최대한 도우려고 합니다. ADHD는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신경학적인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자기 자신을 인정해 나간다면 기억력 문제는 삶을 좌절시키는 요소가 아닌, 극복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노력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