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각 없이 기억하는 방법은 다를까?
우리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기억을 떠올릴 때 ‘장면’을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를 떠올린다면, 케이크의 모양, 친구들의 표정, 풍선의 색깔 등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어릴 적 친구들과 맥도널드에서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의 친구들의 표정이나 매장의 디자인 등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시각적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고 떠올리는 걸까요?
시각장애인의 기억은 비장애인이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과 조금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대신에 촉각, 청각, 후각, 그리고 공간적 감각이 더 발달해 있어서 이러한 감각들이 기억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가 됩니다. 시각 대신 다른 감각기능을 활용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방식은 다차원적이고 감각적으로 풍부한 특징을 보입니다.
2. 시각장애인의 기억은 어떻게 작동할까?
○ 촉각과 기억의 연결
시각장애인은 주로 촉각을 이용해 기억을 형성합니다. 점자를 통해 정보를 읽고, 사물의 질감과 형태를 손으로 직접 만져서 기억에 저장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간혹 만나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손끝의 촉각이 얼마나 좋길래 점자를 저렇게 잘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표기한 점자표시나, 책의 내용을 우리가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듯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 소리와 기억의 관계
시각장애인은 소리를 매우 세밀하게 기억하여 기억을 형성합니다. 특정한 목소리와 억양, 발걸음소리, 방안에 울리는 소리의 반향을 통해 공간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청각은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중요한 기억도구가 될 수 있으며, 특정한 소리만으로도 과거의 경험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만난 시각장애인의 경우 멀리서도 목소리 만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창밖의 소리를 듣고 창문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큰 도움 없이도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후각과 미각을 통한 기억 형성
시각장애인에게는 후각과 미각도 중요한 기억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공간에서 맡았던 특정한 향이 기억에 남아서 다시 그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음식의 맛과 냄새를 더욱 섬세하게 기억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장소나 사람을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 공간 기억력의 발달
시각장애인의 경우 공간을 인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보이지 않아도 특정한 공간을 섬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난 시각장애인들 역시 자주 방문하는 실내에서는 가구의 위치와 동선을 머릿속에 저장하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길을 걸을 때는 주변의 소리 반향과 공기의 흐름을 이용하여 공간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3. 시각장애인의 기억력은 더 뛰어날까?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의 기억력이 비장애인보다 더 뛰어난 것일까요? 연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은 특정 유형의 기억에서 강한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장기 기억의 강점
시각장애인의 경우 정보의 저장 방식이 비장애인과 다르기 때문에 장기 기억력이 더 우수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단순한 시각적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경험한 정보를 더 깊이 저장하기 때문에 장기기억에 더 유리한 것입니다.
○ 언어적 기억력의 발달
시각장애인은 청각을 이용하여 정보를 기억하기 때문에 언어적 기억력이 더 발달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시각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 정보나 촉각정보를 통해 내용을 저장하기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과 함께 책에 대한 내용을 토의하면 그들이 더 깊은 내용을 기억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반복 학습을 통한 강화된 기억력
시각장애인은 안전한 일상생활을 위해 자연스럽게 환경을 기억하고 탐색합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유용하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학습을 하며, 특정 장소들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출근을 할 때에도 같은 길을 걸으며 이동 동선을 끊임없이 파악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은 기억력을 향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시각장애인의 기억을 돕는 기술 발전
현대 기술의 발전은 시각장애인의 기억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조하고 있습니다.
○ 음성 AI와 오디오북
스마트폰이나 음성 AI기술은 시각장애인이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을 보완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오디오북과 음성 비서 기능을 통해 문서를 읽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제 사회복지시설에서는 다양한 음성기술을 활용하여 시각장애인들의 학습을 돕고 있으며, 시각장애인들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은 편입니다..
○ 점자 디스플레이와 촉각 지도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점자 책을 만들어야만 해서 점자책을 발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와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한 점자 디스플레이와 촉각지도가 만들어져 있어, 시각장애인이 정보를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활용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촉각을 이용한 지도는 공간 기억을 도울 뿐 아니라 이동 경로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공간 인식 장치
최근에는 AI 기반 공간 인식 장치가 개발되어, 시각장애인이 더욱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변화되고 있습니다. 음성안내 시스템을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특정한 장소나 물체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부분을 보며 AI가 인간의 사회복지적인 부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가상현실(VR)과 증강 현실(AR) 기술
시각장애인을 위한 VR 및 AR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독립생활을 돕는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VR이나 AR을 게임이나 놀이문화를 통해서 뿐 아니라 장애인들의 복지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바이오닉 아이(Bionic Eye) 연구
최근에는 인공 망막을 통한 ‘바이오닉 아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뇌와 직접 연결된 이 장치는 시각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빛을 감지하고 공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미래에는 시각장애인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망막을 기증한 사람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공 망막이 상용화된다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5. 결론 – 기억은 시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각을 모든 감각들 중 가장 중요한 기억의 도구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을 대신할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 감각이 없더라도 기억력을 가질 수 있으며, 오히려 특정한 정보에 대해서는 더 높은 집중력과 기억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현대 기술의 발전이 시각장애인의 기억과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억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감각이 발휘될 때, 더욱 깊고 선명한 기억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그들의 기억을 다양한 감각으로 활용하여 더 깊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시각장애인들은 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언제가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오늘은 날이 좋아서 그런지 별이 참 많다.’라고 무심코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그래? 나는 평생 별을 본 적이 없어. 나도 별 한 번 보고 싶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사과도 못한 채 미안한 마음만 가득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다양한 기술들이 나날이 더 발전되어 시각장애인들도 언젠가는 별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