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불안과 기억
상담자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내담자들을 상담하게 됩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불안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불안은 기억을 포함한 전반적인 인지 기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또한, 개인의 정서와 사고뿐 아니라 기억의 형성, 저장, 과정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만성적인 불안 상태를 경험하는 이들은 학습이나 대인관계,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기억력 저하나 왜곡된 기억을 가지게 되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오늘은 불안이 기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신경생리학적 기전과 인지심리학적 이론을 토대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또한, 제가 상담자로 근무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상담한 사례를 함께 서술해 봄으로써,, 생생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2. 불안과 기억의 상호작용
불안은 뇌의 여러 영역에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해마와 전전두엽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해마는 인간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부위인데, 과도한 코르티솔 분비는 이 부위의 신경세포에 손상을 입히게 되어 기억형성을 방해하게 됩니다. 제가 상담을 하면서 만났던 내담자들 중에서도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들은 중요한 일상의 사건이나 학습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을 볼 때 평소 준비했던 내용들을 완전히 잊어버리거나, 상담 중 자신의 경험을 명확하게 회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불안은 주의 집중력과 작업기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불안한 상태의 내담자들은 특정 불안 요인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동시에 들어오는 여러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3.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의 불안
○ 해마와 불안
불안 상태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해마의 신경세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로 인해 기억을 선명하지 않거나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심한 불안으로 인해 과거의 중요한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해마의 기능 저하로 인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 편도체와 불안
편도체는 우리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감정처리에 관여하고 있어 불안이나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정 상황에서 불안을 느낄 경우 편도체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건이나 사고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중립적이거나 일상적인 정보는 상대적으로 억제되어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내담자들은 자신이 느낀 부정적 경험에 대해 집착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실제 상황보다 더 부정적으로 왜곡되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전전두엽과 불안
전전두엽은 우리의 머리 앞쪽에 위치해 있는데, 고차원적 사고를 하거나, 무언가를 계획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이 부위의 조절 능력이 크게 약화됩니다. 실제로, 불안을 느끼는 내담자들은 일상적인 문제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의력이나 집중력의 저하로 인해 중요한 일을 놓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3.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의 불안
불안은 신경생리학적 변화를 넘어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뇌는 기억을 저장할 때, 부호화단계, 저장단계, 회상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불안이 우리의 기억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호화(encoding) 단계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처음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부호화 단계라고 합니다. 즉, 뇌가 정보를 입력하고 정리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호화 단계가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는데, 바로 불안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주의가 분산되어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기 어렵게 됩니다. 제가 만난 내담자 중 한 명은, 극심한 불안으로 인해 중요한 발표를 망친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불안으로 인해 발표의 내용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컴퓨터의 소음 등에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준비한 발표를 마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안은 우리의 기억을 입력하고 정리하는데 큰 어려움을 줍니다.
○ 저장(consolidation) 단계
저장단계는 우리의 뇌가 새로운 정보를 저장한 후, 그 내용을 오랫동안 보관 할 수 있도록 고정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가 공부한 내용을 노트에 정리해서 저장하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이때 불안과 같은 강한 감정이 함께 있을 경우에는 그 감정이 기억에 함께 각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불안으로 인해 느낀 감정이 기억의 저장과정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기억을 꺼낼 때, 원래의 사실보다 더 부정적이고 과장되게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제가 상담한 A 씨는 친구와 싸운 경험에 대해 ‘나는 친구에게 배신당했어요. 우리 관계는 이제 영원히 끝났어요.’라며 매우 불안해하고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친구가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 A 씨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A 씨의 기억에 각인된 불안과 슬픔이 친구와 다툰 상황을 과장되거나 왜곡한 경우라고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 회상(retrieval) 단계
회상단계는 기억을 밖으로 꺼내는 단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미 저장되어 있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컴퓨터에서 파일을 찾거나 노트에서 메모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은 세부 사항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불안이 우리가 기억을 회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불안을 느끼고 있는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기억력 저하’를 호소합니다. ‘평소처럼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바보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불안으로 인한 집중력저하가 기억을 방해할 뿐 아니라 온전한 기억을 꺼내지 못한다는 것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4. 불안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
불안이 항상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은 과거부터 생명체의 안전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토끼 역시 초원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약간의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우나 늑대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적당한 수준의 불안은 일시적인 집중력 및 경각심을 높일 수 있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습니다. 적당한 불안은 시험이나 면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례도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내담자들 중의 일부는 일정 수준의 불안을 경험한 후 오히려 그 불안이 동기부여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학업성취도가 높았던 고등학생 내담자 역시 약간의 불안을 통해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불안의 부정적인 측면
하지만, 과도한 불안은 기억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만성적인 불안은 지속적인 기억왜곡 및 인지기능의 저하를 불러오며, 일상생활과 직업적 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줍니다. 또한 불안은 대인관계에서 의사결정 및 문제 해결 능력을 저하시켜 전반적인 삶의 질을 크게 떨어 뜨릴 수 있습니다. 만성적인 불안의 경우 만성피로, 수면장애, 소화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심리적 기능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5. 불안 관리와 기억력 회복 전략
내담자들과 면담하면서 알게 된 불안을 관리하고 기억력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전략들이 내담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지행동치료(CBT)와 감정 조절 기법
깊은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인지행동치료입니다. 내담자들이 부정적 사고 패턴을 알아차리고, 이를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로 전환하도록 돕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 왜곡의 문제나 내담자의 불안도가 점차 낮아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내담자들은 불안의 원인을 스스로 분석하고 감정의 영향을 받는 기억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타인에 대한 편향된 기억으로 불안을 겪던 20대 여성 내담자가 인지행동치료 후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을 상당 부분 개선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명상과 이완 기법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 명상, 심호흡, 이완기법 등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완요법을 통해 긴장된 근육을 풀고, 심호흡과 명상을 하는 과정은 불안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이러한 명상 및 이완기법을 종종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룹상담이나 개인상담에서도 이러한 기법을 활용하여 내담자들이 불안으로 인한 기억 장애를 개선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자기 관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리입니다.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은 뇌 건강을 유지하고 불안 수치를 낮추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자기 관리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면, 기억력 개선 및 스트레스 관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상담한 사례에서도 늘 움츠려 있고 긴장되어 있던 40대 여성 내담자가 복싱과 조깅을 시작한 후 활력을 되찾고 건강한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 경험 공유와 집단 지원
불안과 관련된 기억력의 문제는 종종 사회적 고립감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 상담이나 그룹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자신의 기억에 대한 왜곡이나 불안 증상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가 상담한 내담자 역시 집단프로그램과 외부활동을 통해 우울감과 불안감이 개선되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6. 결론 및 개인적 성찰
이제까지 불안이 기억을 비롯한 신경생리학적, 인지심리학적 기전을 살펴보았습니다. 적당한 불안은 집중력과 경각심을 높여 기억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성적이고 과도한 불안은 대인관계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역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는 상담자로서 수많은 내담자와 상담하면서 불안 상태가 기억과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목격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치료와 및 관리 방법을 통해 충분히 불안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인지치료를 비롯한 다양한 치료기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으로 인한 기억력 저하를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이 불안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동시에 학문적·실무적 통찰을 제공하는 유익한 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