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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과 기억 : 반복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by mindhaven 2025. 2. 25.

강박증과 기억, 반복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1. 강박증과 기억력의 비밀

상담을 하다 보면 강박증을 겪는 내담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요.”라는 말입니다. 내담자 A 씨는 “가스 밸브를 잠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면 또 불안해져요. 가스 밸브를 확인하러 집에 갔다 오느라 회사에 지각한 적도 있어요.”라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이처럼 강박증은 단순히 완벽주의나 깔끔함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특정 메커니즘과 깊게 연결된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며,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강박증을 성격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강박행동은 뇌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대처 전략으로 기억과 깊은 관련성이 있습니다.

 

2. 뇌는 왜 반복 행동을 하게 될까?

불안을 해소하려는 메커니즘

강박증 환자들은 특정한 생각(강박 사고, Obsessions)으로 인해 강한 불안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문을 잠그지 않으면 도둑이 들어서 우리 가족이 모두 위험해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문의 잠금장치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뇌는 확인하면 안심된다.’라는 패턴을 학습하게 됩니다. 결국 뇌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자동 반응으로 확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담자 A 씨는 퇴근 후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합니다. 처음에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혹시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오르게 됩니다. 결국 확인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고, 반복된 확인 행동은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안심을 얻기 위한 행동 중독

강박 행동은 불안을 줄이는 역할을 넘어 보상 시스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반복적인 확인이나 손 씻기 등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인 안정감 느끼게 됩니다. 뇌는 이 순간을 보상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높이거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짜릿한 기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뇌는 이 행동을 하면 불안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되고, 점차 강박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안하면 특정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을 하면 안도하는중독과도 같은 패턴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내담자 B 씨의 경우 손 씻기를 멈추지 못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손을 씻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고 하루에 수십 번씩 손을 씻게 되었습니다. 그는 손을 씻고 나면 잠깐은 괜찮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또 손에 세균이 있는 것 같아서 하루에 수십 번씩 손을 씻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보상은 강박행동을 강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기억의 흐릿함과 의심

강박증 환자의 경우 자신의 기억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문을 잠갔었나?” , “가스밸브는 닫았었나?” 같은 의심이 끊임없이 듭니다. 이러한 증상은 뇌가 불안과 관련된 정보를 더 강하게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적인 기억보다 불안 요소가 강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서 일반적인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반복적으로 확인을 할수록 기억이 더 모호해진다는 것입니다. 뇌는 반복된 행동을 각각의 개별 사건으로 저장하기보다는 하나의 흐릿한 기억으로 통합합니다. 그래서 내가 문을 잠근 것을 몇 번 확인했더라?”라는 의문이 생기고 다시 확인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담자 C 씨의 경우 외출 할 때면, “가스레인지를 끄고 왔나?”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출근 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막상 대중교통을 타게 되면 그 기억이 불확실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반복 행동은 뇌의 정보 처리 시스템에 혼란을 일으키며 기억에 대한 신뢰를 더 악화시키게 됩니다.

 

3.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강박 행동,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의식적인 행동 훈련

강박증 치료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은 행동을 의식화하는 것입니다. 강박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나서면서 문을 감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확인하고 돌아서서 또다시 확인하는 날이 반복된다면 기억은 흐릿해지고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의식적인 행동 훈련은 흐릿해진 기억을 명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문을 잠그는 순간 나는 지금 문을 잠그고 있다.”라고 말하거나 사진을 찍어 남겨두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박 행동을 확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 확실한 기억을 각인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 다른 훈련 방법은 내담자들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기록하게 하는 것입니다. 문을 몇 번 확인했는지, 손을 얼마나 자주 씻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게 하면 본인이 느끼는 불안과 실제 행동 간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담자 스스로 내가 문을 10번이나 확인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행동을 줄일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담자 C 씨의 경우 자신이 가스밸브를 잠그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을 통해 강박행동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며 일상생활이 훨씬 편안해졌다고 만족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강박증 환자는 완벽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상담을 할 때에는 내담자들에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안정감을 가지고 견딜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은 인지행동치료(CBT)의 핵심 전략 중 하나입니다. 완벽주의를 원하는 내담자들에게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스스로 작은 실수를 허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불안 신호에 휘둘리지 않기

강박증 환자들은 뇌에서 보내는 불안 신호를 무서운 경고로 인식합니다. 이런 경우 상담을 통해 지금의 불안은 뇌의 오류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불안 신호에 덜 휘둘릴 수 있습니다. 불안감은 지금 이 순간 생기는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불안 신호에 과도한 반응을 하게 되면, 반복적으로 강박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노출 및 반응 방지법(ERP)

강박행동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노출 및 반응 방지법(ERP)'입니다. 이것은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내담자를 일부러 노출시킨 후 강박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담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뇌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네?”라는 것을 점차 확신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손 씻기에 집착하는 내담자에게 오염된 것 같은 수건을 만지게 한 뒤, 일정시간 동안 손을 씻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극심한 불안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이는 뇌가 새로운 신경 경로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 불안하면 강박행동을 하고, 강박행동을 하면 안심하는 패턴을 서서히 끊어내는 과정인 것입니다. 사실 ERP는 초기에는 매우 힘든 치료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박 행동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상담사는 내담자와 함께 불안의 강도를 조절해 가며 점진적으로 노출 단계를 늘려가고, 불안에 대한 내성을 키우도록 해야 합니다.

 

4. 강박증 극복을 위한 전략과 사회적 자원

강박증은 일시적인 불안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입니다. 내담자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 치료 및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인 치료 계획의 중요성

강박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증상을 완화하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며칠 만에 강박 행동을 멈추고 싶다는 기대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강박증은 서서히 개선됩니다. 앞서 살펴본 인지행동치료(CBT)나 노출 및 반응 방지법(ERP)과 같은 치료법은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증상 완화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약물치료 역시 강박증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는 강박행동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치료 역시 꾸준한 복용과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조절해야 하므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실제 내담자들 역시 약물복용과 심리치료를 병행했을 때, 더 빨리 증상이 완화되었으며, 오랫동안 치료효과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

강박증 환자들이 많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박증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고집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해 강박증 환자들은 깊은 외로움과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내담자들은 흔히 주변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해요.”라는 말입니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은 강박증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지지와 공감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가족 상담을 통해 강박증 환자와 주변 사람들이 함께 치료과정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도움은 환자들의 증상완화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스트레스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

강박증은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는 강박증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규칙적인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운동 등은 뇌 기능을 안정화시키고, 강박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명상이나 심호흡, 요가와 같은 이완 기법도 불안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특히, 명상은 뇌의 전두엽 활성화를 돕고,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것

강박증 치료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치료 포기"입니다. 초기에는 호전되는 듯 보이다가도 다시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치료를 중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므로, 단기적인 증상 악화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상담을 할 때, 내담자들에게 완치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조언합니다. 강박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증상의 강도와 빈도를 줄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 강박증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강박증은 개인의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닙니다. 뇌의 특정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장애입니다. 희망적인 것은 상담과 치료를 통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불안을 억누르려 하기보다 불안을 그대로 두고 견디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 불안하지만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이 강박 행동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불안에 대처하는 새로운 전략을 배운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